제레미 델러 “Don’t worry be angry”

제레미 델러

 

“Don’t worry be angry” 저항 깃발

 

이 깃발은 제레미 델러라는 아티스트가 정치적인 비판을 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입니다.

Creative time에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16명의 예술가들에게 작업을 맞겼는데요, 이 중 제레미델러는 요코 오노, 라토야 루비 프레이저 등 을 포함해 10번째 아티스트입니다.

위의 깃발들은 뉴욕에서 텍사스, 플로리다까지 총 14개의 예술교육기관에 개시되었고, 의미인즉 트럼프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선은 이모티콘을 이용하여 위트있게 사람들에게 친숙히 다가갈 수 있는 듯 하며,  don’t worry be angry 라는 패러디 문구로 재치있게 메세지를 전달하며 웃음포인트 또한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대중들에게도 쉽고 편리하게 다가갈 수 있게끔 SNS를 통하여 널리 전파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항의 깃발 프로젝트의 디렉터는 저항의 상징을 나타낼 수 있는 깃발이라는 매개체와 깃발을 걸어놓는 공간 자체가 영구적인 저항공간이 될 수 있어 매우 이상적인 형태로 보였다고 합니다.

항의깃발

인스타그램캡쳐

깃발을 작업한 작가는 제레미 델러라는 영국 현대미술의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는 주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주제들을 예술로 접근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예술작품 제작행위를 매개로 작가, 참여자, 대중과의 소통을 꾀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델러가 미술작업과 큐레이터로 경력을 전환하게 된 것은 93년도 함께 살고 있던 부모님이 휴가를 떠나 있는 동안에, 자신의 침실에서 전시를 하면서부터 입니다.

그는 주로 대중음악과 시각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고, 민속 미술이라 불리는 토착 미술 컬렉션, 대중음악이나 우편 미술, 근대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재정립을 주제로 하여 다큐멘터리 영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작품을 제작 하였습니다.

아래는 그의 첫 전시인 Open Bedroom입니다.

 

오픈베드룸_01 오픈베드룸 오픈베드룸_02

Open Bedroom

다른 작가들처럼 Open studio를 열고 싶었지만, 개인 스튜디오도 없었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이 2주간의 휴가를 떠난 틈을 타 Open studio대신 Open Bedroom 전시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10년뒤에서야 책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됐다고 합니다.

 

 

그는 구체적인 문화, 사회, 역사적인 상황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다수의 공동 프로젝트들을 기획했으며, 여기에서 델러는 큐레이터이며 감독, 출판업자의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의 주제들은 대체로 지역 특정적이고 정치적인 색채를 띄었습니다.

예를 들면, 80년대 요크셔 지방에서 발생했던 파업 광부들과 경찰들 사이의 무력 충돌을 다룬 역사의 재현인 오그리브의 전투입니다.

 

오그리브전투_02 오그리브전투_01

사진출처:네이버영화

 

오그리브의 전투

2001년 작품 <오그리브 전투The Battle of Orgreave>는 1984년 시위를 벌이던 광부와 경찰의 충돌을 재연한 작품입니다. 이 사건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왜곡되어 전달되었고 델러는 이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어 진실을 밝히려 했습니다.

이 재연 현장을 담은 필름을 보면 광부들이 먼저 폭동을 일으킨 것처럼 BBC가 자료화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델러는 사건 가담자들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연하도록 하여 대처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조작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했습니다.

 

2004년도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하며 아티스트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도전적인 성향이 강한 그의 작품들은 기존 현대미술과 전통적 예술가의 역할과 개념에 도전하며 틀을 깨며 다양한 현대미술 세계에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현상들을 찾아내고 그것에 상상력을 동원해 사회적 관계에 첨부시키는 작업을 통해 예술가의 기존 역할과 활동 가능영역을 확장시켰다고 합니다.

 

 

광주비엔날레

사진출처:광주비엔날레 페이스북

 

마지막으로 2014 광주 비엔날레에서 만날 수 있었던 델러의 작품 “무제”입니다.

역시나 틀을 깨는 형식으로 건물안에서 불이나, 벽을 뚫고 나오는 문어를 입체적으로 그려 압도감을 주는 듯 합니다. 문어는 여러가지 상징하는 것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써 인식되어왔는데요,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것 처럼 그리고 작품의 제목이 무제인 만큼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는 듯 합니다.

 

 

또한 델러는 86년도 뉴욕에서 앤디 워홀을 만나고 워홀의 팩토리에서 2주의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워홀의 작품세계에 압도되어 1990년 초부터 본격적인 예술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작업방식이 워홀과 비슷하다고 해서 ‘작은 앤디 워홀’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워홀의 팝아트가 화려함을 상징했다면 델러의 작품들은 그것보다 가공되지 않은 토착된 언어로 표현된 민중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제레미델러

그는 90년대 초 현대예술계의 변혁을 이끄는 선구자 중 하나였는데, 당시 그들은 사물을 제작하는 창조적 활동보다는 다른 어떤 것들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이런 활동들이 현대예술에서 전통적인 예술의 미학적 가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고, 대중들의 사고 전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델러는 전문적 교육과정을 통해 미술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통해서 예술작품 활동을 해왔고, 전형적인 아티스트란 무엇인가에 지속적인 의문을 던지며 전통적 개념의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거부하며 예술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왔다고 합니다.

 

 

 

<참고 및 출처 : http://m.jungle.co.kr/magazine/

http://blog.daum.net/misulmun49/

https://blog.naver.com/filmemovie

https://blog.naver.com/leespider

https://www.itsnicethat.com

http://creativetime.org >

 

Author.

리를 / Gabia UI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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